신용회복경험담
31세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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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300자)
대학교 졸업 후, 나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큰 수입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소소하게 전시도 열고, 디자인 작업도 꾸준히 들어와서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혼자 살면서 생기는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적인 마음이 더 컸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500자)
하지만 상황은 4년 전부터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 사정 속에서도, 막내 동생이 미술 전공으로 해외 유학을 꿈꿨고,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 꿈을 응원했다. 부모님 대신 내가 대출을 떠안기로 했다. 처음엔 유학비용 일부만 마련할 생각이었지만, 학비와 생활비, 비자 비용 등 예상을 초과하는 지출이 이어지면서 은행 두 곳과 카드사 두 곳에서 대출과 카드론을 받았다.
채무는 순식간에 8천만 원까지 불어났다. 프리랜서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수입은 들쭉날쭉했고, 카드값을 갚기 위해 다른 카드로 돌려막는 악순환에 빠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달 연체 통보와 독촉 문자에 시달리며, 밤에 잠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400자)
결정적인 계기는 한 통의 통장이 압류되면서 찾아왔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몇 안 되는 수입마저 묶이자, 그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마음을 지배했다. 사실 개인회생이란 제도를 알게 된 건 그보다도 몇 달 전이었지만, 솔직히 ‘내가 그런 걸 해야 하나’ 하는 자존심 때문에 미뤄왔다. 주변 친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상담을 권유했을 때도 처음엔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서 상담을 받게 됐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던 날, 온몸이 굳은 듯 떨렸다. 부끄럽고, 한편으론 안도감도 있었다. 드디어 누군가에게 이 무거운 짐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500자)
상담을 시작으로, 서류 준비와 변제계획안을 세우는 데 약 두 달 정도 걸렸다.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뒤 인가 결정이 날 때까지 총 4개월이 걸렸고, 인가가 나던 날은 정말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월 평균 수입 약 150만 원 중 60만 원을 3년간(36개월) 변제하는 계획으로 인가를 받았다. 변제기간 동안 꼭 필요한 생활비만 남기고, 나머지는 꼬박꼬박 법원 계좌에 입금해야 했다. 가끔은 예기치 못한 병원비나 작업 장비 수리 같은 돌발 지출로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장 긴장됐던 건 법원 출석이었다. 담당 판사님 앞에서 내 수입과 지출 내역, 채무의 경위를 진술해야 했는데, 준비해 간 모든 말을 잊고 버벅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정직하게 설명한 덕분인지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때 느꼈다. 감추거나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300자)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매달 정해진 금액을 납부하며 살아가는 게 결코 쉽진 않지만, 적어도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은 한결 가볍다. 최근엔 몇몇 출판사와의 계약도 이어지고 있고, 나를 지지해주는 동생도 졸업 후 취직해 조금씩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혹시 나처럼 채무로 고통받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도망치지 말고, 너무 늦기 전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한 제도다. 나처럼, 다시 자신만의 삶을 그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