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6.18 11:15

1억 7천만원 빚에서 벗어난 농촌 아낙의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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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농촌 생활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50세 된 농촌 주부입니다. 남편과 함께 충남 작은 농촌 마을에서 30년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요. 두 아이는 모두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각자 생활하고 있고요.

우리 부부는 벼농사와 고추, 콩 농사로 1년에 4천만원 정도 벌어들였어요. 농한기에는 남편이 건설 일용직으로 나가서 월 200만원 정도 더 벌었고요.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빚 없이 단출하게 살았습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우리 최대 관심사는 농사일과 자식들 걱정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해 여름, 아이들이 "엄마, 요즘 부동산 값이 많이 올랐대요. 여유 있을 때 하나 사두면 좋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부동산 투자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어요.




부동산 투자라는 달콤한 유혹

2021년 초,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가 "나 대전 아파트 하나 샀는데 벌써 5천만원 올랐어"라고 자랑하는 걸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우리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인터넷으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도 보고, 부동산 카페도 가입하고...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는데, 점점 재미가 붙더라고요. "아,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구나" 싶었어요.

첫 번째 실수는 2021년 3월이었어요. 대전 둔산동 아파트를 6억에 샀는데, 자기 돈은 1억밖에 없어서 나머지는 모두 대출받았어요. 처음에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6개월 만에 7억으로 올랐거든요.

그 성공에 취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아파트까지 샀습니다. 천안 신부동, 청주 흥덕구... 하나씩 살 때마다 대출은 더 늘어났어요. 그런데 그때는 "부동산은 절대 안 떨어진다"는 말만 믿고 있었거든요.

3년간의 지옥 같은 나날들

2022년부터 상황이 급변했어요.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심각해지더라고요.

제일 큰 문제는 대출 이자였어요.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450만원이 넘었는데, 우리 농사 수입으로는 감당이 안 됐어요. 결국 한 채씩 팔기 시작했는데, 샀을 때보다 훨씬 싼 값에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3년에는 정말 최악이었어요. 세 채 다 팔았는데도 빚이 1억 7천만원이나 남았거든요. 시중은행 두 곳에서 1억 2천만원, 저축은행에서 5천만원... 농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어요.

남편은 스트레스로 병까지 얻었어요. 평생 빚 없이 살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니까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더라고요. 저도 밤마다 울면서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후회했습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현실

2024년 2월, 결국 아이들에게 모든 걸 털어놨어요. 그동안 괜찮다고 둘러댔는데,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거든요. 큰아이가 전화로 "엄마,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하며 우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

그때 둘째가 인터넷으로 개인회생에 대해 알아봐주더라고요. "엄마, 이런 제도가 있대요. 한번 상담받아보세요"라고 하면서 법무사 사무실 연락처까지 찾아줬어요.

처음에는 정말 부끄러웠어요. 50년 넘게 살면서 법원 갈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마을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며칠 밤을 새웠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체면이 중요하냐, 살아야지"라고 하더라고요.

개인회생, 그 어려운 첫걸음

2024년 4월, 드디어 대전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갔어요. 농촌에서 대전까지 왕복 3시간 걸리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법무사님이 우리 상황을 듣고 나서 "충분히 개인회생 가능하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농업 소득이 일정하고, 성실하게 일해온 이력이 있으니까 법원에서도 긍정적으로 볼 거라고 하셨어요.

서류 준비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농업 소득 증명, 지난 3년간 통장 거래내역, 부동산 매매 관련 서류... 제 지난 3년간의 잘못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6월에 개인회생 신청서를 법원에 냈고, 8월에 법원에 가서 면담을 받았어요. 판사님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제 이야기를 했는데, 판사님이 "앞으로 성실히 농사지으며 변제하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인가 후의 새로운 시작

10월에 개인회생 인가 결정이 났습니다. 총 1억 7천만원 중에서 3천 4백만원만 5년에 걸쳐 갚으면 되는 거였어요. 월 변제금은 57만원으로 정해졌고요.

솔직히 월 57만원도 쉬운 금액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전에 매달 450만원씩 이자를 내던 것에 비하면 정말 천국이죠. 무엇보다 은행에서 오던 독촉 전화가 완전히 끊어진 게 가장 좋았어요.

지금 변제를 시작한 지 8개월째인데, 한 번도 빠뜨린 적 없이 꼬박꼬박 내고 있어요. 농한기에는 남편이 일용직을 더 많이 나가고, 저는 마을 어르신들 도시락 배달 일도 시작했어요.




흙에서 다시 피어난 희망

요즘은 다시 농사일이 즐거워졌어요. 예전엔 부동산 생각 때문에 농사에 집중을 못했는데, 이제는 온전히 농사에만 신경 쓸 수 있거든요. 올해는 새로운 품종의 고추도 시도해볼 계획이에요.

아이들도 이제는 마음 놓고 전화해요. 예전엔 전화 받기가 무서웠는데, 이제는 "엄마, 농사는 잘 되세요?"라고 물어보는 소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의 평화예요. 예전엔 밤에 잠들기 전에 항상 빚 생각 때문에 괴로웠는데, 이제는 내일 할 농사일 생각하며 편하게 잠들 수 있어요.

앞으로 4년 4개월 더 성실히 변제하고, 2029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할 거예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농사짓고, 아이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

농촌에서 개인회생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주변 시선도 신경 쓰이고, 법적 절차도 어렵고... 하지만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저처럼 3년 동안 혼자 버티려다가 상황만 더 악화시킬 필요 없어요.

개인회생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법이 우리에게 준 두 번째 기회예요. 특히 농업 종사자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다고 봐주니까 인가받기도 어렵지 않아요.

지금 저에게 가장 소중한 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마음 편히 농사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돈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더 소중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세요. 흙에서 다시 희망이 피어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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