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4.04 11:29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날” – 31세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4.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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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조용하지만 자유롭던 삶

나는 31살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다. 전시회 참여보단 주로 게임 회사나 출판사에서 외주 작업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수입이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사는 데 큰 무리는 없었고,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도, 종종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스케치하며 미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수입도 점점 나아지리라는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2. 전개: 사기의 시작, 빚의 덫

문제는 어느 날 SNS 메시지 한 통으로 시작됐다. “아티스트를 위한 고수익 투자 플랫폼”이라며 접근한 사람은 포트폴리오와 실제 성공 사례를 들이밀며 설득했다. “작업에만 집중하고, 돈은 불릴 수 있다”는 그 말에 혹했던 것 같다.

처음엔 300만 원을 넣었고, 한 달 뒤 350만 원이 돌아왔다. 그렇게 신뢰가 생겼고, 1천만 원, 2천만 원까지 투자 금액이 커졌다. 하지만 그게 ‘작전’이었다. 어느 날부터 플랫폼은 접속이 안 되고, 담당자도 연락이 두절됐다.

그 와중에 전화로 "보이스피싱 피해자 통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었다"는 통보를 받았고, 본의 아니게 사기 공범처럼 엮여 신용까지 크게 손상됐다. 무너지는 심정을 안고 급하게 돈을 마련하려다 저축은행, 대부업체에서 연이율 20%가 넘는 대출을 받게 됐고, 그 결과 1년 반 만에 채무는 9,200만 원까지 불어났다.



 

3. 위기: 더는 피할 수 없었던 순간

대출 이자가 매달 100만 원이 넘게 빠져나가니,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생활비도 모자라 3일 굶고 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다. 작업을 넘기고도 기운이 없어 눕기 일쑤였고,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마감 지연이 몇 번 반복되며 신뢰마저 잃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모친이 내 상태를 걱정해 오랜만에 찾아온 날이었다. 내 방 책상 위에 놓인 연체 고지서와 독촉장이 그녀의 눈에 띄었고, 말없이 눈물을 훔치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렇게는 안 된다’며 개인회생을 검색했다.

상담받기까지 한 달 정도를 고민했다. ‘이게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길인가?’ ‘젊은 내가 벌써부터 회생이라니…’ 자존심도 상했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더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결국 결심하게 됐다.



 

4. 해결: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개인회생 절차는 생각보다 명확했다. 상담 후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데까지 약 2개월, 그리고 인가까지 총 5개월이 걸렸다. 변제 계획은 매달 28만 원씩 3년간 상환, 총 1천만 원 남짓을 갚는 조건이었다. 나머지 금액은 법적으로 탕감받는 구조였다.

처음엔 내 과오를 고백하는 듯한 심정으로 서류를 준비했다. ‘이것도 그림처럼 나만의 스토리를 설계하는 과정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정리했다. 법원 출석 날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젊은 나이에, 수트도 아닌 작업복에 가까운 옷을 입고 법정에 선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판사님이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입니다”라고 말해주셨을 때, 왠지 울컥했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5. 결말: 다시 내 삶의 스케치를 시작하며

현재는 변제 1년 차다. 3년 동안은 소비를 철저히 줄이고, 불필요한 외출이나 지출은 최소화하고 있다. 외주 작업도 다시 조금씩 회복 중이고, 재정적으로는 여전히 팍팍하지만 마음만큼은 훨씬 가볍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에 쫓기던 시절엔 손에 연필을 쥐는 것조차 무서웠다. 지금은 하루 한 장, 스스로를 위한 드로잉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분 중, ‘내가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자책에 빠져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개인회생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출발선이다. 나 역시 부끄러움을 이겨냈고, 당신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스케치북을 채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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